여행하는 삶
에세이
트래블러 전남 보성_첫번째 이야기
#보성#귀촌#일몰#물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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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다섯 살 즈음 뒤늦은 사춘기가 와서 주위에 스물다섯에 뭘 하셨냐 묻고 다녔었다.
다들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했거나 군대에 갔거나 대부분 비슷한 대답뿐이었다.
먼 훗날 나보다 어린 누군가가 나에게 스물다섯에 뭐 하셨어요? 라고 물어본다면
나는 그 뻔한 대답을 하기 싫을 것 같아 사직서를 내고 무작정 제주로 떠났다.

그 시절 제주는 게스트하우스가 10개가 채 안 되던 시절이었고
나는 열정으로 가득 찬 청춘이었기에 지금으로써는 상상도 할 수 없지만 무급 스텝으로 열심히
일하여 배낭을 멘 수많은 여행자들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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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많은 시간이 지나고 여수 여행 중 시골마을에서 배터리가 떨어져 저 멀리 보이는 마을회관에 가서 어르신들께 양해를 드리고 핸드폰을 충전하고 있었다.

한 할머님이 오시더니 이 시골엔 어쩐 일이냐 하여 여행 중이라 했더니 세상에 여자가 혼자 여행을 다한다며 까무러치게 놀라셨다.
나는 고등학생 때부터 혼자 여행을 했고, 인도며 전기 수도도 없던 라오스 오지 마을을 다니던 때라 이 안전한 한국에서 왜 저리 놀라시는지 당혹스러웠었다.


할머님은 “이내 나이를 먹으면 살아온 추억 곱씹으면서 사는데, 나는 젊어서 고생한 기억밖에 없다.
지금은 얼마나 세월이 좋으냐, 많이 여행도 하고 옆에 좋은 사람들도 만나고 좋은 추억 많이 만들며 살라”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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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면 떠오르는 것들 젊음, 청춘, 에너지

우리가 얼마나 좋은 시절에 태어나 마음껏 여행을 하며 살아왔나 새삼 느끼게 된다. 실제로 지금 청춘들은 경제 호황기에 태어났고, 휴전국가긴 하지만 전쟁이 없는 우리나라 역사 이래 가장 평화로운 시대에 산다고 한다.


우리가 처음 접하는 이 팬데믹이 그래서 더 두렵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전 세계를 여행하는 우리지만 여전히 태어나서 살고 있는 지역을 단 한 번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사람들도 있다.


섬에서 나와 다시 보성으로 두 번째 귀촌을 하면서 나는 지금 이곳 여행을 하고 있다. 어디를 가도 아름답지만 어디를 가도 사람이 없어 자연적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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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덕산제 저수지에 자주 간다.
가까운 곳에 바다도 산도 있지만 가끔은 정적인 에너지가 주는 고요함이 좋다.
4차선 도로에서도 보이는 곳이지만 진짜 숨어있는 곳은 동네 사람 아니면 모를 명상의 길.
나도 이곳에 산 지 2년이 지나고서야 이 길을 발견했다.
저수지를 한 바퀴 돌려면 쉬지 않고 걸어 1시간 반 정도가 걸리는데 4분의 1이 이 명상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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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는 벚꽃이 아름답게 피고 여름엔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준다.
사람을 마주치는 일이 거의 없을 만큼 조용하고 평지라 걷기 명상하기에 아주 좋다.
천천히 깊게 호흡을 들이쉬고 내쉬고 천천히 한발 한발 대지의 에너지를 느끼며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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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에 스치는 풀잎도 느껴보고 숲의 흙 내음과 저수지에 반짝이는 빛을 보며
복잡한 생각과 마음은 구름처럼 흘려보내고,
그렇게 걷다 보면 지금 이 순간이 행복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이 순간의 온전함에 감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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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데군데 조용히 캠핑할 수 있는 공간들이 있으니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을 피해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싶은 여행자라면 맘에 들 것 같다.
해질녘 데크 산책로에서 바라보는 일몰이 아름다워 물 멍하기 좋다.

글쓴이

 

온바없이 왔다 간바없이 가는 은둔형 여행자!
지금은 보성 시골마을에서 예술명상 스튜디오를 운영하고있다.

@cocoa2j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