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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긴 여행- 버킷리스트 33번, 제주에서 살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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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 2023-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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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나의 속도로 살아가는 삶

#버킷리스트#제주살이#국내여행











매일 같은 건물들을 보며 반복되는 출퇴근 속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역마살이 있다는 소리를 꽤 많이 들었던 나는 주기적으로 낯선 곳으로 떠나는 숨통이 필요했다. 그럴 때마다 해외여행을 가자니 돈과 시간이 문제였고 기차나 버스로 가는 여행은 왠지 멀리 떠나는 느낌이 부족했다. 여권은 필요 없지만 공항에 들러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는 곳, 그렇게 현실과 타협한 곳이 바로 제주도다.










1년에 4번, 사계절에 한 번씩 제주에 갔고, 좋아하는 카페에 들러 커피 한잔 마시며 미리 골라온 책을 읽고 바닷가 산책을 했다. ‘여행’이라기 보다 제주에 머물며 좋아하는 것들을 했다. 그러면서 그곳에 좋아하는 동네가 생기며 자주 갔던 게스트하우스 사장님, 카페 사장님과 인사를 나누며 친분을 쌓게 되었다. 서울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잠시 잊게 해주는 곳, 나중에는 그곳의 사람이 그리워 제주행 티켓을 끊게 되었고 제주를 찾는 기간은 점점 짧아졌다.










짧은 일정으로 채워지지 않은 무언가를 가슴에 담아두며 언젠가 꼭 살아보자고 버킷리스트에 적어 넣었다. 그러던 중 3년 넘게 다녔던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고 1년 반 사귀었던 남자친구와도 헤어졌다. 가진 게 없으니 자유로운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고 어쩌다 보니 나는 제주에 머물고 있었다.









첫 제주 생활 시작은 서쪽 협재에서 멀지 않은 한수리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였다.


서른이 조금 지난 나이, 새롭게 직장을 구하기 전 그토록 노래를 불렀던 제주에서 한두 달쯤 게스트하우스 스텝을 하면서 제주에 지내며 휴일에는 온라인으로 구직활동을 해보자고 생각했다. 아침에 일어나 집 앞 바닷가를 산책하고 다시 숙소로 돌아와 게스트들의 아침식사를 준비한 후 그들이 돌아간 자리를 청소하고 치우다 보면 반나절이 훌쩍 지나간다. 새로운 게스트들이 입실하기 전까지는 자유시간, 책을 보기도 하고 낮잠을 자기도 하며 회사 생활에선 있을 수 없는 게으름의 시간들이 주어진다.


한 달이 넘어갈 즘 통장 잔고와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마냥 행복할 수 없었다. 돌아갈 일은 뒷전이고 어떻게 하면 제주에서 일하며 조금 더 살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문은 두드리는 자에게는 열린다는 말처럼 일자리를 찾는 중 제주 시내에 미술관이 생기며 카페 매니저를 구한다는 공고를 보게 되었다. 기숙사를 제공해 주는 조건인 덕분에 언제든 돌아갈 수 있도록 서울의 원룸 월세를 내면서 제주 생활을 이어갔다. 제주시에서 일하며 쉬는 날엔 제주 곳곳을 여행하며 어느덧 1년 반, 직장 생활을 했다.


내 것이라곤 캐리어 몇 개로 다 쌀 수 있는 짐이 다인 제주의 삶이 과연 옳은 선택이었을까? 잠 못 들던 때도 있었다. SNS로 보이는 친구들의 모습과는 내가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도시에서 바쁘게 사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자니 나는 그냥 멈춰있는 것 같았다. 서울에서 회사 생활을 할 때보다 더 적은 월급을 받으며 이곳에 사는 것이 그저 도시 생활의 도피였을까 …


그럴 때마다 제주의 자연은 나를 위로했고 더 이곳에 머물도록 붙잡아 주었다. 말도 안 되게 멋진 노을 지는 바다를 보고 있으면 행복했고 그 순간만큼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자고, 천천히 나의 속도로 원하는 삶을 찾아가 보자고 다짐했다.









그렇게 내가 그리던 제주 시골의 바닷가 삶이 아닌 시내에서 밥벌이를 이어가는 생활에 다시 서울로 갈지 고민하던 그때 제주는 나를 한 번 더 잡았다.









제주 동쪽 바닷가 마을 세화의 바다가 보이는 아담한 카페를 1년 동안 운영해 볼 기회가 생겼다. 생생히 꿈꾸고 원하면 이뤄진다는 말처럼 또 하나의 꿈이 이뤄졌다.

서울에서의 짐은 모두 정리하고 제주로 이사를 왔고 카페를 운영하며 지금의 남편과 반려견 나리를 만나게 되었다. 그 후 제주도에서 2년 반 남편과 연애를 하고 우리는 결혼을 하며 구례로 오게 되었다.




(중략)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 지으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 로버트 프로스트 <가지 않은 길>











4년 그리고 몇 개월의 제주에서의 삶이 서른 살 이후의 큰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때론 힘들고 외로웠고 고민도 많았지만 그때의 내 선택에 후회는 없다. 물론 그때 다시 도시의 삶을 택했다면 또 다른 내가 있을 수 있지만. 서른 즈음 내가 했던 고민을 하고 있는 여행객들을 카페에서 자주 마주한다.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정답은 없다고 그저 내가 택한 선택이 후회하지 않도록 지금을 살자고 너에게 그리고 나에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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