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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인생, 그 중간 어디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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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 2023-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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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Life is like a mountain.

#한라산#제주도#설산#영실코스#어리목코스



 




#내가 산을 가는 이유


나는 종종 고민이 있거나, 무언가 결심을 할 때 주로 산을 가곤 한다.


작년부터는 평일에 여유가 생기기도 했고, 코로나로 인해 인적이 드문 곳을 찾다 보니 자연스레 산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평소였으면 혼자 묵묵하게 산행을 했을 텐데, 신기하게도 작년엔 혼자 산을 탄 게 꼽을 정도로 친구들과 많이 산행했다.







#한라산을 가다


2021년이 된 기념으로 설산이 보고 싶어 산행을 계획하던 차에, 일하면서 친해진 동생 한 명이 등산을 해보고 싶다 하였고, 그렇게 우리는 한라산을 가기로 했다.


나는 이미 한라산을 5번 넘게 가 본 상태였으나 동행하는 동생에게는 이렇게 높은 산이 처음이어서 무리하지 않는 겨울 산 코스를 정하기로 했다. 그런 이유로 윗세 오름을 볼 수 있는 ‘영실코스’와 ‘어리목 코스’는 더 할 나위 없는 코스였다.


원래는 오전 새벽 비행기를 타고 밤늦게 돌아오는 당일치기 코스로 한라산 등산을 하려 했으나, 같이 간 동생이 “그래도 제주도 간 김에 하루는 자고 오는 게 좋지 않을까?”라고 제의하였기에 선뜩 승낙했다. 내 목적은 단 하나, ‘눈 덮인 한라산을 꼭 보고 오는 것’ 이었으니까.








# 피그말리온 효과


나는 ‘(그게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계속 생각하고 말하면 실제로 이루어진다’는 말을 아주 신뢰한다. 우리는 입이 마르고 닳도록 ‘아, 산행을 할 때 눈이 왔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며 간절히 설산을 보길 원했다. 설산을 보기 위해 한라산 등산을 결정했는데 막상 가서 눈 녹은 산을 보면 실망할 것 같았다. 아, 너무 간절히 원한 탓인가, 제주도에 1월 6~8일 57년 만에 한파와 폭설이 찾아온다는 기상예보를 접했다.


6일 새벽, 우리는 부푼 마음을 안고 김포공항을 떠나 무사히 제주공항에 도착했다. 둘 다 뚜벅이인 탓에, 공항에서 제주 시외버스터미널로, 또 터미널에서 영실코스로 직행하는 버스를 연달아 탔다.


오전 11시 반, 영실코스에 도착하여 산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전에 눈이 조금 왔던 탓에, 입구에서 아이젠 없이 입산 금지라는 안내를 받아, 울며 겨자 먹기로 대피소에서 일회용 아이젠 만 원짜리를 사 신고, 산행을 시작했다. 둘 다 쓸데없는 곳에 돈 쓰는 스타일이 아니라 조금 아까웠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아이젠 때문에 올라가지 않을 순 없으니 단단히 장착하고 본격적인 등산을 시작했다.


등산 초입부에는 눈이 많이 오지 않아서 그런지 길도 험하지 않고, 온 세상이 하얗게 물든 모습이 정말 그야말로 장관이었기에, 예쁘게 사진도 한 컷씩 찍고 신나게 정상을 향해 달려갔다.









#위기, 그리고 또 위기


하지만 그것도 잠시, 올라가면 갈수록 눈과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서, 앞이 보이지 않을 지경에 이르렀다. 설산을 원하긴 했지만 이런 광경까지는 아니었는데… 원래도 고생을 사서 하는 스타일인데, 이번에도 역시나! 적당히 눈이 오고 청량한 공기를 마시며 산행을 하길 바랐던 내가 어리석었다.


그렇게 또 한 번 우리는 위기를 마주했다. 너무 소원을 간절히 빈 탓에 올라갈수록 점점 더 날씨는 추워졌다. 정말 사진이고 뭐고 손이 얼어 죽을 것 같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영상을 찍으면서 올라갔다. 가는 도중 지나가던 분이 동생에게 “저 사람(나) 혹시 일행이냐, 얼굴이 너무 빨간데, 혹시 어디 아픈 것 아니냐”라며 빨리 한번 확인해보는 게 좋을 거 같다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춥다고 느끼긴 했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웬걸! 정상에 가서 거울을 보니 얼굴이 정말 빨갛고 모공까지 전부 다 보이는 심각한 상태였다. 평소에 제 나이보다 많이 어려 보이는 편이라, 종종 신분증 검사를 하는데 처음으로 내 나이 대의 얼굴을 본 것 같아 당황스럽기 짝이 없었다. 당황스러움도 잠시, 정상에서 라면을 먹으며 추위를 달랬다. 평소 라면을 잘 먹지 않는데, 추운 데서 먹는 참깨 라면은 그야말로 진국이었다!


그렇게 몸을 녹인 뒤에 밖으로 사진을 찍으러 나갔고, 때마침 정말 귀신같이 날씨가 잠시 풀렸다!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파란색 하늘을 배경으로 인생 샷 하나를 건졌다.


영실코스는 다른 곳보다 짧고 길이 덜 험해서 등산 초보자들이 오기에는 딱! 인 코스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렇게 춥고 눈이 많이 오는 날에는 역시 집에서 쉬는 게 현명하다. 물론 힘든 만큼 추억도 많이 쌓이지만, 때로는 그 힘듦이 기억을 조작하여 그다지 좋은 여행이 아니라고 망각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산을 오르는 동안 같이 간 동생에게 계속 괜찮은 지 물어보고 쉬어 가면서 정상까지 도달했다.


다행히 동생은 오랜만에 이렇게 산에 오니 속이 뻥 뚫린다며 너무 좋아했고, 같이 데리고 와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 순간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더 가까워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요새는 한라산 정상에서 코스별로 실시간 CCTV를 볼 수 있다. 정상에 올랐을 때 한 친구에게 한라산을 갔다고 말하니, 잠시 뒤 CCTV를 볼 수 있는 사이트에 접속하여 나와 동생을 찍은 사진을 보내주었다. 정작 우리는 카메라가 어디 있는지 못 찾아 연신 아무 곳에나 손을 계속 흔들며 돌아다녔는데 그런 영상까지 찍었다 하니 너무 웃겼다.









#Life is like a mountain


또 한 번 한라산을 등산해보니, ‘인생은 산과 같다’고 하는 게 참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을 올라가다 보면 많은 일들을 마주한다. 그 과정 속에는 계속 힘든 상황만 있는 게 아니라, 여러 즐거움도 있음을 느낀다. 오르는 과정은 힘들어 포기하고 싶다가도, 중간중간 쉬어 가며 바라보는 자연 풍경은 그 자체만으로 큰 즐거움을 준다.









#목표보다는 과정을 위한 등산, 그리고 인생


정상에 도달할 즈음 목표를 이뤘다는 성취감에 기분이 정말 좋지만, 그 순간이 그리 오래가지 않음을 깨닫는다. 인생도 그렇다. 내가 원하는 목표에 도달한 순간은 정말 행복할지라도, 그 기분이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음을 느낀다. 오히려 ‘이 목표가 이렇게 허무한 것이었나?’라고 생각할 때가 더 많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하지만 무엇이든 직접 경험하고 부딪혀봐야 그제야 이런 생각도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이유로 나는 산이 정말 좋다. 이런 감정들을 계속 반복해 나가면서 삶을 열심히 살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또 하나의 추억을 안고


이번 산행은 혼자일 때 드는 생각들을 느끼기는 어려웠지만, 같이 등산한 동생과 함께 또 하나의 색다른 추억거리를 만들었다는 점이 더 인상 깊게 다가왔다. 사실 이 친구와 했던 모든 얘기를 전부 기억한다고 말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서로가 그때 당시 고민하고 나눴던 생각, 감정, 그리고 그냥 심심치 않았던 얘기들로 더욱 돈독한 관계가 되었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그런 이유로 나 하나만을 믿고 따라와 준 동생이 정말 고마웠고, 거기다 내가 가보고 싶던 ‘설산’이어서 더 좋았다. 하고 싶은 것을 함께해 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 그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이때의 좋았던 순간순간의 기억을 갖고, 나는 다시 또 열심히 살아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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